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트너가 앞장서 싸웠던 3가지

 

 

 

세계적인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가 지난 927일 타계하면서 안타까움을 전해주었습니다.

 

살아생전 그가 만든 잡지 이름처럼 플레이보이로 명성을 높였던 휴 헤프너는 무려 1000명 이상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밝히면서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바 있는데요. 죽는 순간까지도 마를린 먼로 묘지 옆에 안장되면서 호색한이라는 이미지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간에 알려진 바람둥이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반전 모습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깜짝 놀랄만한 모습을 정리해봤습니다.

 

 

 

 

1. 동성애 지지

 

휴 헤프너는 1950년대 초반 플레이보이를 창업하면서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주장을 해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핍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인데요.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 그가 의외로 동성애를 지지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휴 헤프너는 동성애자의 세계에서 이성애자를 핍박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이성애자의 세계에서 동성애자를 핍박하는 것 역시 잘못이라고 반박하며, 훗날 동성결혼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성소수자 단체들의 활동을 옹호하며 힘을 보탰던 휴 헤프너의 모습은 그를 호색한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거 같습니다.

 

 

 

 

2. 피임약과 낙태자유권

 

수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가지며 사랑에 있어 개방적이었던 그는, 여성들의 인권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여성들이 피임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낙태자유권에도 찬성을 한 것인데요. 동성애 지지와 마찬가지로 이런 여성들의 성결정권과 인권을 지지한 것은 시대를 앞선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 인권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에 있어서도 휴 헤프너는 시대를 앞서 갔는데요. 흑인이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던 시절, 헤프너가 흑인을 자신의 파티에 초대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기업 스폰서들은 이런 헤프너의 일탈(?)행동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광고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그의 입장엔 변함이 없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충실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3. 표현과 종교의 자유

 

휴 헤프너는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한 활동에서 앞장섰습니다. 그가 만든 플레이보이 재단은 현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해왔는데요. 일부에서는 그를 두고 인종과 성별, 그리고 섹스를 뛰어 넘어 세상의 모든 차별에 맞서 싸워왔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앞장 서 싸워왔던 휴 헤프너. ‘플레이보이라는 다섯 글자 안에 그를 가두기에는 그의 영혼은 너무도 자유로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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